도시가스 고객서비스업체와 위·수탁계약을 체결한 도시가스 검침원도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이 정한 노동자에 해당한다는 첫 법원 판결이 나왔다. 노조법은 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임금·급료 기타 이에 준하는 수입에 의해 생활하면 노동자로 보고 있다. 수도검침원과 전기검침원의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성이 인정된 사례는 있었지만, 도시가스 검침원의 노조법상 노동자성이 인정된 판결은 이번이 처음이다.
8시간 일하고 최저임금 수준, 사측 “노동자 아냐”
25일 <매일노동뉴스> 취재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14부(재판장 송각엽 부장판사)는 경동 강동 고객서비스와 울산도시가스서비스가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노동행위 구제재심판정취소 소송에서 최근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쟁점은 도시가스 검침원도 노동 3권 행사가 가능한지였다. 5개 권역의 경동도시가스 검침원으로 구성된 공공운수노조 경동 도시가스 고객서비스센터분회(분회장 김정희)는 2021년 1월5일부터 같은 해 6월18일까지 네 차례에 걸쳐 단체교섭을 요구했다. 그러나 사측은 검침원이 노조법상 노동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교섭을 거부했다.
노조는 울산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했다. 울산 지노위는 검침원들은 노조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며 사측이 단체교섭에 불응한 것은 부당노동행위라고 판단했다. 중노위도 △도시가스 업체의 지휘·감독 △계약 내용이 사용자에 의해 일방적으로 결정된 점 등을 토대로 초심 판정을 유지했다.
도시가스 업체들은 불복해 지난해 3월 소송을 냈다. 사측은 “위임약정서에 ‘독립사업자’로서 위임받은 업무를 수행한다고 정하고 있으므로 검침원들은 개인사업자가 명백하다”며 “검침원이 내용과 대가를 보고 계약 여부를 결정하고 수수료도 협의해 결정됐다”고 주장했다. 민원발생시 주의·페널티 조치도 검침 오류 방지를 위한 것일 뿐 불이익은 없어 지휘·감독 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검침원들이 개인사업자로 업무 수행하는 것을 선호했다는 주장도 펼쳤다.
법원 “검침 업무 필수적, 검침원 자율성 없어”
법원은 검침원의 노조법상 노동자성을 인정했다. 검침 업무는 도시가스 사업에 필수적인 부분으로, 사용자의 관리·감독 범위 안에 있다고 봤다. 지휘·감독의 근거로 △업무지침을 준수해 업무수행 △지정 근무복·명찰 착용 △사전에 검침 시기 결정 △검침 실적 주기적 확인·실적 저조시 수시로 독려 △민원발생시 회사 직원이 검침원에게 주의 촉구 및 페널티 적용 △업무매뉴얼 위반시 계약해지 등을 제시했다.
검침원의 자율성도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검침원은 할당받은 구역의 검침 업무와 이에 부수된 업무를 수행할 뿐 고객을 유치해 업무량을 늘림으로써 수입 규모를 확대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검침원들이 독립해 사업을 영위하거나 이윤 창출과 손실 초래 등 위험을 안고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검침 업무가 보수 대부분을 차지해 ‘소득의존성’이 높은 부분도 짚었다. 실제 회계법인의 도급비 산정용역에 따르면 검침원은 2019년 하루 평균 8.6시간(한 달 20일 근무 기준)을 일하고 받은 수수료는 월평균 약 157만원에 머물렀다. 최저시급 수준에 그친 셈이다. 배당받은 지역 내 6천~7천세대의 검침을 완료해야만 수수료를 받을 수 있었다. 2020년 9월~2021년 8월 사이의 월평균 수수료도 170만~200만원 초반에 그쳤다. 재판부는 “업무시간·내용에 비춰 검침원은 현실적으로 겸업이 어렵고 대부분 검침원은 특정 사업자로부터 얻는 수입을 주된 소득으로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노동 3권 보장해 노동 조건 향상 필요해”
이를 전제로 검침원이 받는 수수료는 ‘임금·급료 기타 이에 준하는 수입’이라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업무수행 대가가 고객이 아닌 업체로부터 사후에 정산해 받고 있고, 수수료는 검침량에 일정하게 비례한다는 점이 지표가 됐다. 재판부는 “업체들에 의해 계약이 일방적으로 결정되는 점 등을 고려하면 검침원에게 노동 3권을 보장함으로써 업체들에게 단체교섭 의무를 부담케 해서 노무제공 조건 등의 집합적 향상을 도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 판결이 검침원의 노동자성 범위가 확장되는 계기가 될지 관심이 쏠린다. 김정희 분회장은 “유류비와 차량을 지원하는 등 적정임금을 반영해 달라고 100원 인상을 요구했는데, 사측은 75원 인상만 주장한 채 단체교섭을 거부해 왔다”며 “유류대와 식대를 빼면 최저임금 수준으로 검침원의 근무여건은 여전히 열악하다. 5개 업체 사장이 바뀔 때마다 교섭을 새로 해야 하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도시가스 검침원들은 근로자지위확인 청구를 통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도 다툴 계획이다.
홍준표 기자 forthelabor@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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