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고은 기자

지난 8일 롯데택배에서 일하는 택배노동자 김아무개(49)씨가 뇌출혈 진단을 받고 병원 중환자실에서 치료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다른 택배사에서 일하던 김씨가 지난 2월 롯데택배로 이직한 지 3개월 만이다. 전국택배노조에 따르면 김씨는 월 5천개 수준의 물량을 배송하며 하루 13~14시간씩 주 6일을 일했다. 사회적 합의에 따라 분류인력이 투입됐지만 현장 작업 여건이 개선되지 않아 노동시간 단축 효과가 전혀 없었다는 점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택배노동자 장시간 노동 문제 점검이 필요해 보인다.

추가근무 신청만 세 달간 23번

19일 택배노조 설명을 종합하면 지난 8일 롯데택배 성남 한 대리점에서 일하는 김씨가, 며칠째 출근하지 않은 것을 이상하게 여긴 대리점 소장의 방문으로 병원으로 이송됐다. 김씨는 지난 4일 배송을 마치고 자택으로 돌아간 뒤 다음날인 5일부터 출근을 하지 않고 연락도 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의사소통이 불가능할 정도로 이상증세를 보여 병원으로 이송됐는데 뇌출혈 진단을 받아 현재 중환자실에 입원 중이다. 가족들과 떨어져 사는 김씨는 최초 증상을 보인 시점부터 3일 넘게 방치돼 있던 것으로 보인다.

김씨는 대리점 소장의 권유로 지난 2월부터 다른 택배사에서 롯데택배 해당 대리점으로 옮겨 일하기 시작했다. 노조가 파악한 대리점 소장과 동료들 증언에 따르면 하루 13~14시간씩, 주 6일 근무를 했다. 일한 시간이 일주일 평균 80시간이나 된다. 실제로 김씨는 지난 2월부터 저녁 9시 이후에도 배송업무를 하기 위해 20번 넘게 ‘연장 신청’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롯데택배 노동자들은 배송 애플리케이션이 저녁 9시까지만 작동되기 때문에 9시 이후 일을 하려면 긴급사용신청을 통해 대리점 소장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승인을 받으면 10시까지 1시간 추가 근무가 가능하다.

롯데택배 사측도 김씨가 연장 신청을 20번 넘게 한 사실을 부인하지 않았다. 사측은 김씨가 2월(7회), 3월(12회), 4월(3회), 5월(1회)로 총 23번 연장을 신청했고 승인받았다고 밝혔다. 다만 김씨의 노동시간과 관련해서는 “전산에 기록된 근무시간은 (입원) 직전 12주간 평균 주 60.5시간을 일한 것으로 확인된다”고 반박했다. 사회적 합의에 따라 택배기사의 최대 작업시간을 ‘하루 12시간, 주 60시간’으로 제한했다. 사측 주장으로도 최대 작업시간은 지켜지지 않은 셈이다.

서울복합물류센터 1년 새 두 명 뇌출혈

노조에 따르면 김씨가 일한 서울복합물류센터에서는 지난해 또 다른 롯데택배 노동자가 과로로 쓰러지는 사고가 발생한 적이 있다. 임아무개(48)씨는 지난해 6월13일 새벽 다발성 뇌출혈로 쓰러진 뒤 현재까지 의식불명 상태다. 노조는 당시 임씨가 배송한 물량이 월 6천개, 하루 250여개 수준으로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93시간이라고 주장했다.

1년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과로 문제가 또다시 불거진 데에는 구조적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김씨가 일하는 대리점에는 사회적 합의에 따라 분류인력이 투입된 상태다. 그런데도 김씨가 장시간 노동에 내몰릴 수밖에 없었던 원인에는 서울복합물류센터의 구조적 특성이 있다는 것이다. 서울 전역 허브터미널 역할을 하는 해당 물류센터는 일반 서브터미널과 달리, 간선차량의 하차작업이 끝난 뒤 간선차가 나간 공간에 택배기사들이 배송차량을 대야 하기 때문에 분류작업을 위한 레일을 기사들이 직접 설치해야 한다는 게 노조의 설명이다. 분류작업 시작시간(오전 7시) 이전에 레일을 설치해야 하는 만큼 분류작업 투입과 무관하게 오전 7시 이전에 출근해야 하고, 때문에 노동시간도 줄어들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더군다나 김씨의 경우 차량 위치가 가장 안쪽에 위치해서 오전 6시30분까지 출근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방우성 노조 롯데택배본부장은 “분류인력 투입 등 과로를 막기 위한 조치가 시행되긴 했지만 쓰러진 택배노동자가 일한 환경을 들여다보면 이러한 조치가 무의미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며 “지난해 6월에 이어 같은 지역에서 같은 과로사고가 발생한 것은 구조적인 문제가 명백하다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2021년 6월14일 서울 여의도 포스트타워 앞에서 열린 전국택배노조 기자회견 현장. 당시 롯데택배 한 대리점에서 일하던 택배노동자 임아무개씨는 일하다 뇌출혈로 쓰러졌다.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 2021년 6월14일 서울 여의도 포스트타워 앞에서 열린 전국택배노조 기자회견 현장. 당시 롯데택배 한 대리점에서 일하던 택배노동자 임아무개씨는 일하다 뇌출혈로 쓰러졌다.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노동자 50% “분류작업 여전히 한다”
사측 “90% 이상 분류인력 이미 투입돼”

김씨가 일했던 곳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노조가 지난 12일부터 13일까지 롯데택배 노동자 21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 50%는 “분류작업을 직접 한다”고 답했다. 분류작업을 하는 택배노동자들 가운데 64.6%는 “분류비용을 받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지난해 6월 택배기사 과로사 대책을 위한 사회적 합의에 따라 올해부터 택배노동자를 분류작업에서 완전히 제외하고, 불가피하게 분류작업을 해야 할 때는 분류비를 지급해야 한다. 사회적 합의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롯데택배측은 “사실이 아니다”고 부인했다. 사회적 합의에 따라 올해 4천명의 분류인력을 투입하기로 했는데 이 중 92%(3천680명)는 이미 투입이 완료됐고 나머지 8%(320명)는 현장 여건상 투입이 어려워 택배노동자에게 시급 1만6천원의 분류비를 지급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최근 본사 차원의 분류작업 투입 실태조사를 진행한 결과다.

택배노동자 과로사대책위는 이날 오전 서울 중구 롯데글로벌로지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롯데택배는 사회적 합의를 성실히 이행하고 실질적 과로방지를 위한 조치를 시행해야 한다”며 “(지난해 6월과 지난 8일) 쓰러진 택배노동자들에 대한 도의적 책임도 져야 한다”고 밝혔다. 국토교통부가 지난 1월 실시한 사회적 합의 이행 점검도 다시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토부는 지난 1월 택배현장 불시점검 결과를 발표하며 ‘양호’ 결론을 내렸다. 택배노동자가 분류작업에서 완전히 배제된 곳이 점검 대상 25개 터미널 가운데 7곳(28%)에 불과한데도 이 같은 결론을 내려 비판을 받았다.

롯데택배측은 “작업장 여건 개선을 위한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며 “개선할 부분이 있다면 검토 후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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