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양극화·고령화 전환 등 구조적 위기… 미래세대 위해 개혁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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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2.10.13. 오후 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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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철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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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석호(왼쪽부터) 전태일재단 사무총장, 권기섭 고용노동부 차관, 한지원 작가, 박지순 고려대 로스쿨 교수가 지난 7일 서울 중구 문화일보 회의실에서 열린 특별좌담회에 참석해 노동시장의 구조적 위기와 노동개혁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윤성호 기자


■ ‘노동시장 개혁의 미래’ 특별좌담

갈등 가득한 노동시장

상위 10% 소득 과점유 ‘불평등’

노조 밖 노동자에 맞춰 개혁 필요

법·원칙 지키는 게 해결 출발점

노동운동의 방향은…

‘對자본 전투적 운동 전략’이란

87년 체제 프레임 유효성 잃어

재벌 아닌 勞使 개혁으로 접근


정부가 최근 김문수 전 경기지사를 대통령 직속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위원장에 임명하면서 노동시장 개혁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정부 안팎에서는 임금·근로시간 개편이란 기존 개혁 과제와 함께 노동시장에 유연성을 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노동시장 개혁 연구를 맡은 미래노동시장연구회는 연말 개혁 방향을 발표할 예정이고, 경사노위는 추가 개혁 과제 발굴에 나섰다. 반면 양대 노총을 중심으로 정부의 노동시장 개혁에 반발하는 목소리는 커지고 있다.

권기섭 고용노동부 차관

한석호 전태일재단 사무총장

박지순 고려대 로스쿨 교수

사회 : 한지원 작가

<前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정리=정철순 기자

문화일보는 국민의 일·생활에 미칠 파급력이 큰 노동시장 개혁을 앞두고 지난 7일 권기섭 고용노동부 차관과 한석호 전태일재단 사무총장, 박지순 고려대 로스쿨 교수 등 노동 분야 전문가들을 서울 중구 새문안로 문화일보 사옥에 초청해 개혁의 방향과 미래노동 시장의 위기를 주제로 좌담회를 가졌다.

이들은 한국 사회가 구조적 위기에 봉착했으며, 노동개혁을 피할 수 없다고 봤다. 과거 외환위기 때처럼 강압적인 방식의 개혁을 겪기보다는 노사정이 먼저 대화를 가져야 한다는 제언도 일치했다. 권 차관은 “임금·근로시간 개편과 함께 미래 세대가 필요한 개혁 과제를 도출해야 하고 개혁의 근저에는 유연성과 적응성, 안정성 등을 다뤄야 한다”며 미래 세대를 위한 개혁 필요성을 제기했다. 평생 노동운동에 투신한 한 사무총장은 정부의 임금체계 개편의 실현 가능성에는 “턱도 없는 이야기”라고 일축하면서도 “일부 대기업·정보기술(IT) 기업의 마구잡이 임금인상 대열에 끼어들지 못한 노동자들은 상실감과 박탈감을 느끼고 왜곡된 공정으로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고려대 노동대학원장을 맡고 있는 박 교수는 “입법을 통한 개혁은 경직성과 보편성 이슈로 인해 지연될 수밖에 없고, 노사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자율성에 기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좌담회 사회는 사회진보연대 부설 노동자운동연구소에서 활동한 한지원 작가가 맡았다.

 

△한 작가 = 권 차관님이 먼저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개혁의 의미를 설명해달라.

△권 차관 = 일단 지금 노동시장에 대한 문제의식에서부터 시작하겠다. 노동시장의 이중구조와 양극화 문제가 심각하다. 대기업 정규직이라는 소수의 조직화된 노동자들에 대한 과보호가 고착화되면서 이들과 중소기업 근로자 간 임금 차별 격차가 크다. 또 우리의 고령화 속도는 세계에서도 전대미문으로 빠르다. 지난해 총인구가 처음으로 감소했고 생산가능인구 30만 명이 감소했는데 결국 국가경쟁력 문제까지 연결돼 있다. 결국 ‘현재 노동시장에 대해 기존의 법이나 관행으로 구조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까’라는 문제의식이 있다. 일시적이기보다는 구조적인 위기에 봉착해 있다. 정부는 현재 법·제도 관행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함이 있다. 현 정부는 ‘법과 원칙에 기반해 산업현장의 불합리한 관행을 개선하고 현장의 노사관계에 대해서는 법 테두리 내에서 노사의 자율적 해결을 지원한다’는 확고한 기조로 일관되게 대응한 결과, 근로손실일수가 대폭 줄어드는 등 노사관계 지표는 역대 정부와 비교해 볼 때 가장 안정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대우조선해양 사태 등 사회적으로 이슈화된 갈등도 대화와 타협을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선례로 만들어내는 등 노사 간 자율과 타협의 교섭문화가 자리잡고 있다.

△한 작가 = 노동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구조적인 위기를 부정하는 사람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이 ‘왜 안 되는 거냐’고 한다. 그리고 반대 이유에 대해서는 말하는 것을 꺼려 한다.

△박 교수 = ‘노동개혁이 무엇 때문에 필요한가’라는 공감대가 먼저 이뤄져야 구체적인 담론과 생산적인 합의·타협이 도출될 수 있다. 지금까지 노동개혁을 추진하는 쪽에서는 개혁 자체를 지상과제로 설정한 반면, 반대 쪽에서는 무조건 저지하려는 적대적 전선이 형성됐다. 권 차관님은 노동시장 양극화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근저에는 차별화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 사회를 쓰나미처럼 덮치는 구조적 대전환에 어떻게 대처해 나가느냐가 중요하다. 디지털 전환과 기후위기로 인한 탄소중립사회로의 전환,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노동수급의 변환 등 3가지 거대한 전환이 우리 노동사회에 큰 변화를 미치고 있는데 여기에 대응하지 못하면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드는 데 장애가 된다.

△한 작가 = 한 사무총장님은 정부의 노동개혁을 노동개악이라고 보실 것 같은데, 최근 정부의 움직임이나 노동운동을 어떻게 보는지 설명해달라.

△한 사무총장 = 노동운동을 하면서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자주 했다. 최근에 판교로 대표되는 IT 기업들과 재벌 회사 위주로 임금을 급격하게 상승시켰다. 그걸 보면서 ‘나중에 어떻게 감당할까’란 생각이 들었다. 임금인상에 끼어들지 못한 노동자들은 상실감과 박탈감을 느끼고 왜곡된 공정으로 가고 있다. 노동개혁이 안 된 이유는 ‘프레임 전쟁’이라고 본다. 정부와 경영계는 노동개혁, 노동계는 재벌개혁으로 접근했다. 서로 자신의 관점에서 자신의 문제를 빼고 접근하는 방식이다. 노동계 내부는 휴전선보다 더 갈라져 있다. 원청과 하청, 정규직·비정규직 문제를 보면 휴전선을 넘을 수 있는데도 넘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노동계가 스스로 이런 문제를 극복해야 하지만 재벌개혁만 강조한다. 이제 프레임을 바꿔서 노사개혁으로 접근해야 한다. 노사개혁 속에서 임금체계 문제, 노사가 어떻게 한국사회를 끌고 갈 것인지에 대한 총론을 개혁해야 한다. 덧붙이면 한국 사회에서 1987년 체제의 유효성이 상실됐다. 1987년 체제의 노동운동 특징은 ‘자본에 대한 전투적 운동전략’이었다. 그리고 기업은 ‘노동에 대한 배타적 경영전략’이었다. 이제 경영은 포용적 경영전략으로, 노동은 사회연대적 운동전략으로 가야 한다. 노동계와 경영계 전략이 바뀌면 서로 타협할 수 있는 지점이 많을 것으로 본다.

△박 교수 = 1987년 체제를 말씀하셨는데, 중요한 지적이다. 한국은 1953년 노동법을 제정했는데 당시는 법을 적용할 수 있는 분야가 빈약했다. 노동법 역할을 할 수 있었던 물적 토대는 산업화가 본격화된 1970년대부터이고 그때부터 노동기본권에 대한 인식이 싹텄다. 하지만 노동기본권 실현은 정치적인 문제로 지연되다가 1987년 민주화 시기 폭발했고, 1990년대를 맞았다. 당시는 세계사적으로 산업구조 및 지식사회 전환이란 엄청난 변화를 겪기 시작했다. 그런데 우리는 지연된 노동기본권을 찾으려는 운동이 제조업 중심으로 주류를 형성했고, 노동개혁 담론 자체가 지연됐다. 노조가 강경하게 변한 반면, 우리 기업의 경쟁력은 세계화 과정에서 보호 없이 노출돼 버린 상황이 됐다. 기업의 경쟁력이 굉장히 중요한 이슈인데 우리 노동운동은 과거에 집중하는 모순이 발생했다. 노동개혁이 어려운 것은 문제를 해결하다 보면 다른 결과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원 포인트’로 해결하려고 법을 개정하려고 해도, 개정할 경우 나중에 발생할 부작용을 우려해 결국 현상유지로 입장이 모이게 된다.

△한 작가 = 노동개혁의 큰 쟁점인 임금체계 문제도 이야기해봐야 할 것 같다.

△권 차관 = 정부는 근로시간을 주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개편하는 것에 대한 부작용을 어떻게 해결할지 집중했다. 근로시간을 줄이면서 대기업이나 IT 직종은 영향이 적었고 (임금을) 지킬 수도 있었다. 반면 중소기업과 제조업은 근로시간을 줄이면서 임금감소로 연결됐다. 이는 결국 중소기업과 대기업 근로자 간의 임금 격차로 이어졌다. 선한 의지로 제도를 시행해도 부작용이 나온다.근속연수가 올라갈수록 임금을 많이 받는데 이런 상황에서 고령자를 계속 고용할 수 있겠느냐의 문제도 나온다. 임금체계 개편과 관련해 정부는 적용 가능성이 있는 곳부터 찾아보려고 한다. 당장 정년연장 문제도 다가오고 있다. 정년연장과 임금체계 개편은 사회적으로 합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년연장과 임금체계 개편만 합의할 수 있다고 하면 재직 근로자와 신입 근로자에 대한 임금체계에 대해서는 탄력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 재직 근로자들의 임금체계를 오롯이 다 개편하자는 것이 아니라 다가올 수 있는 문제를 앞두고 적용을 해본 후에 이를 논의할 수 있는 규제를 좀 풀어보자는 것이다.

“使는 포용경영, 勞는 사회연대운동으로 전환해야 타협점 나온다”

임금체계 현주소

기업들 급격한 임금인상 경쟁

대다수 노동자에게 박탈감 줘

‘왜곡된 공정’이라는 지적 나와

노동개혁의 열쇠는…

노사자율성, 민주주의 교육하듯

종업원대표제 등 통해 실현 가능

정치권도 책임의식 갖고 접근을


△박 교수 = 정부가 노동개혁의 메뉴를 임금과 근로시간으로 들고 나왔을 때 많은 분이 실망했다고 한다. ‘정부의 과감성이 부족하다’는 비판과 함께 ‘실현 가능성에만 초점을 맞췄다’는 지적이었다. 개인적으로 그런 지적에 동의하지 못한다. 임금체계의 구조적 불평등, 세대 간, 대·중소기업 간 불평등 문제가 심각하다. 임금문제를 직무급으로 돌파한다면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동일한 직무 가치를 가진 노동에 대한 보편적인 임금수준을 측정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진다. 당장 ‘동일노동 동일임금’ 가치가 실현되지 않는다고 해도 참고자료가 늘어나는 것이다. 외국에서는 그런 문제를 산별교섭으로 해결하지만 우리는 산별교섭 체제가 아니라, 기업에서 이뤄지는 체계를 통일적 관점에서 시스템으로 해결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한다면 산별교섭이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보완할 수 있다. 빨리 처리해야 할 문제인데 그동안 지연된 것이다.

△한 작가 = 노동개혁을 한다면 노동시장에 참여하는 대다수에게 힘을 받거나 설득력을 가져야 한다. 노동운동이 노동개혁을 수용했던 상황은 1987년과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등 굉장히 강제적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이 아니면 노조가 참여하지 않았다.

△한 사무총장 = 노사정이 각자 한다고 하면 어떤 개혁도 불가능하다. 지금 노동운동은 노동의 평등을 실현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보인다. ‘세계 불평등 보고서’를 보면 한국의 최상위 1%가 국민소득의 14.7%를 가져가고, 차상위 9%가 31% 정도를 가져간다. 이걸 합치면 46%인데, 상위 10%가 소득을 과점유하고 있다. 이들의 소득 비중을 낮춰야 하는데 정부의 노동개혁은 현실을 비껴가고 있다. 노조 밖의 연 소득 3000만 원 이하인 하위 50%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노사정 모두 이런 문제는 뒷전이고 노조 울타리 안만 보려고 한다. 무엇보다 정부의 노동개혁이 불가능하다고 본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개혁에 동의하지 않으면 임금체계 개편을 할 수 없다. 노조가 힘을 갖고 있는 현장에서 임금 개편은 턱도 없는 이야기다. 직무급에 따라 연봉 차이를 두면 현장이 운영되지 않고 노동자들은 계속 파업할 것이다.

△한 작가 = 지금 정부의 노동개혁이 현 세대와 미래 세대에 대해 호소력이 부족한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조직된 사람들끼리 충돌하면서 흘러가는 느낌도 드는데 정부가 초점을 두고 있는 집단이 있다면.

△권 차관 = 사회적 대타협이 실제적으로 이뤄졌던 게 IMF 외환위기 때 했던 정리해고이고, 그 이후는 잘 안 됐다. 소위 말하는 상급단체들이 당시 양보를 했다는 트라우마가 있다. 노동개혁이 즉시적으로 효과를 나타내는 것은 현실에서 잘 없다. 결국 노동시장 양극화 문제를 풀어야 하는 것에 대해서는 다들 공감을 하셨는데, 조직화된 근로자들의 양보 없이 할 수 있느냐에 대해선 사실 의문도 있다.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 기제를 마련하는 것은 금방 효과가 나타나기 어려운 부분이다. 정부도 그런 부분이 어려운 것을 안다. 다만 여러 나라의 노동개혁 사례를 인용하는데 구체적으로 보면 별 내용이 없다. 최근 프랑스의 개혁이 이야기되는데, 부당해고에 대한 금전 보상 액수를 명확히 한 것이다. 실제 우리가 금기시하는 해고 등을 추진하면 프레임 싸움이 된다. 직접적이고 와 닿을 수 있는 이슈나 슬로건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지만, 노동개혁이 갖는 특성이 있어 어려움이 있다.

△한 사무총장 = 정부에서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를 꺼낸 것을 긍정적으로 본다. 정부와 경영계가 솔직하지 못하다는 생각을 한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로 접근하면 하위 50%를 끌어올릴 것으로 봐야 한다. 이들은 지불능력의 문제가 있다. 정규직들끼리만 다 가져가서 비정규직에게는 줄 게 없어 연 2000만 원을 받는 비정규직이 있다. 이런 분들의 문제를 푸는 접근이 필요하다. 정부가 임금체계와 근로시간에 대해 집중하는 것을 이해한다. 산업 경쟁력 측면에서도 필요하다. 기업들이 임금 교섭 속에서 경쟁적으로 임금을 올려주다 보면 노동자들 간 임금 격차는 더 커진다. 하위는 아직 낮은 상태인데 위에는 막 올라간다. 이게 사회적으로 소득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문제고, 기업의 입장에서도 경쟁적으로 과도하게 가고 있다. 경쟁적 임금 인상을 막지 못하면 높은 소득 구간에 세금을 촘촘하게 짜야 한다.

△박 교수 = 좋은 지적이지만 정부가 임금인상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우리가 오래된 문제만 이야기했는데 미래문제도 이야기해야 한다. ‘우리 청년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어떻게 만들어줄 거냐’의 문제를 두고 정부가 톱다운 방식으로 하는 것은 단견적인 정책이다. 노사가 스스로 노동규범을 형성해 나갈 수 있게 여지를 만들어주는 것이 우리가 추진해야 할 노동개혁의 큰 방향성이 돼야 한다. 정부가 일관된 임금체계를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노사 자율성을 높일 제도적 인프라에 집중해야 한다. 임금과 근로시간이란 두 가지 문제를 핸들링할 수 있는 제도적 보완책이 종업원대표제에 있다고 본다. 유럽처럼 종업원대표제를 도입해 자율성을 높여나가면 입법 부담이 줄어든다. 입법을 통해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하면 모든 근로자에게 평등하게 다 적용해야 해 현실적으로 어렵다. 최저임금 대폭 인상처럼 자영업 등 새로운 이슈가 나온다. 입법을 통한 개혁은 경직성과 보편성 이슈로 인해 지연될 수밖에 없다. 노사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자율성에 기반해야 한다.

△한 작가 = 종업원대표제의 취지에 동의할 분들이 많지만, 막상 갈등 상황이 되면 노사 모두 법으로 해결하려 하고 교섭으로 해결하려 하지 않는다.

△박 교수 = 그동안 경험이 없었다. 중소기업에 제대로 된 교섭이 있었나. 일방적으로 사용자에 의한 통제가 미조직 사업장에는 일반화돼 있다. 우리도 민주주의 교육을 하듯이 노사 자율성을 위한 교육이 필요하다. 그런 훈련들이 종업원대표제를 통해 만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 작가 = 정부에 이런 부분들에 대한 로드맵이 있나.

△권 차관 = 정부는 노사 자율성과 미조직 노동자 문제를 어떻게 수용할 수 있는가를 고민하고 있다. 자율성 측면에서 근로시간에 관해 협의할 수 있는 부분을 어떻게 할지에 대한 고민도 있다. 그리고 임금체계에서도 정부가 노사 협의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과제도 있다. 정부가 모든 걸 다 규제하다 보니 기존 대공장 노조의 협상력을 높여줬다. 이제 정부가 다른 규제를 풀어야 하는 면이 있다.

△한 작가 = 지금 경제 상황에서 인플레이션이 조기에 종식되면 경기침체가 오고, 그게 아니면 인플레이션이 더 지속된다. 취약계층은 더 어려워질 것이다. 노동개혁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오고 있는데, 노동개혁을 꼭 하게끔 하는 키가 있다면, 마지막으로 하나씩만 말씀해달라.

△한 사무총장 = 외환위기에 버금가는 위기가 오면 강압적인 방식의 개혁이 될 것이다. 결국 위기가 아닌 상황에서 풀어야 하고 그러려면 노사정이 타협을 통해 풀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시간이 걸려도 사회적 타협을 만들어내야 한다. 코로나19 위기 속에서 하층 근로자들의 문제에 포인트를 두거나 이들의 일자리 필요 등을 염두에 두고 민주노총까지 포함해 진지하게 고민해보길 제안 드린다. 지금 당장은 어렵겠지만, 정부가 노력하면 금속노조도 대화 테이블에 앉힐 수 있다.

△박 교수 = 노동개혁을 통해 사회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은 당연한 접근인데, 아이러니가 있다. 노동 이슈는 모든 국민의 자기 현실이고, 2000만 명의 노동자뿐만 아니라 그 가족의 문제다. 국민은 노동법·노동정책·노동규범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어려워한다. 정부는 두 가지를 적극 고민해야 한다. 하나는 미래노동시장연구회를 꾸려서 전문가들 중심으로 메뉴를 만들고 있는데, 이 메뉴가 굉장히 비전 있고 현실성을 가진 내용이어서 국민에게 제대로 전달돼야 한다. 둘째는 노동의 문제를 정부가 주도적으로 끌고 나가지만 국회 차원에서 정치적으로 다뤄야 한다. 노사에 맡기면 계속 평행선을 가고 타협이 어렵다. 지금까지 정치권은 노동개혁 문제를 ‘잘해봐야 본전’으로 접근하고 있다. 정치권의 무관심과 무책임을 극복하지 않으면 노동개혁이 이뤄지지 않는다. 노동개혁에서 정치권의 역할이 강조돼야 한다.

△권 차관 = 노동개혁은 국민적 지지와 정치권 노력이 다 합쳐져도 어려운데 지금은 정부 혼자 주도하는 상황이다. 구체적인 과제를 모두 이야기할 수 없지만, 노동개혁의 과제에 유연성과 안정성이 조화돼 혁신과 다양성을 보장하면서도 이중구조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두 가지 다 버리긴 어려운 상황이다. 시대적 상황에 따라 고용안정과 차별 해소란 두 가지 가치에 각각 무게가 쏠렸는데, 지금은 둘 다 하려다 아무것도 못 하는 상황이 됐다. 이중구조 문제 해결을 통한 격차 해소와 혁신·다양성을 더 보장할 수 있게 노동개혁을 추진하겠다. 노동개혁은 국민적 과제이고 실생활과 연관돼 있는 문제다. 국민의 관심을 기대하고, 박 교수님의 제언처럼 국민이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최선을 다하겠다.

특별좌담 인사들



■ 권기섭 고용노동부 차관

권 차관은 고용부터 노사관계, 산업안전 분야에 이르기까지 고용부 내 주요 요직을 거쳤다. 1992년 36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입직했으며 노동부 기획재정담당관, 고용부 고용정책총괄과 과장, 고용서비스정책관, 직업능력정책국 국장, 근로감독정책단 단장, 고용정책실 실장, 노동정책실 실장 등을 지냈다. 특히 지난해 7월 신설된 고용부 산업안전보건본부 본부장에 임명되는 등 부처 내 ‘해결사’ 역할을 하고 있다. △서울대 경제학과 △노동부 기획재정담당관 △고용부 직업능력정책국 국장 △고용부 노동정책실 실장 △고용부 산업안전보건본부 본부장 △고용부 차관



■ 한석호 전태일재단 사무총장

한 사무총장은 청춘을 노동운동에 바친 ‘야전형 운동가’란 평을 받았다. 그는 1987년 6월 항쟁 당시 명동성당투쟁동지회를 만들어 처음 구속됐고 1990년에는 전국노동조합협의회 결성을 주도했다. 2001년 대우차 사태 때는 금속연맹 조직쟁의실장을 맡는 등 굵직굵직한 노동운동 이력을 갖고 있다. 평생을 노동운동에 투신했지만, 대기업 기득권 노조에는 비판적으로 접근한다. 특히 민주노동 운동이 조합원들만의 이익을 대변하고 비정규직과 연대하지 못한 점을 비판할 때는 거침이 없다. △민주노총 사회연대위원장 △전태일재단 사무총장 △사단법인 노동공제연합 풀빵 운영위원장



■ 박지순 고려대 로스쿨 교수

박지순 고려대 로스쿨 교수는 국내 유일의 노동전문대학원인 고려대 노동대학원의 원장을 맡고 있다. 박 교수는 노동계에서 현장과 이론을 모두 겸비한 전문가로 통한다. 특히 현재의 플랫폼노동자와 저출산·고령화 등 미래 노동시장 연구에 있어 학계를 선도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박 교수는 유럽 선진국의 노사 관계 연구를 통해 역대 정부마다 노동개혁 필요성을 역설한 학자로 주목받았다. 박 교수는 노사정 대화 속에 노사 자율성에 기초한 해결을 제언했다. △고려대 법대 졸업 △독일 아우크스부르크대학교 법학박사 △고려대 로스쿨 교수 △노동법이론실무학회 회장 △고려대 노동대학원 원장



■ 한지원 前노동자운동硏 실장

한지원 작가는 사회진보연대 부설 노동자운동연구소 등에서 15년간 경제 및 노동문제를 연구한 경제학자며, 국내 대표적인 젊은 마르크스 이론가로 꼽힌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을 맡으며 민주노총과 금속노조 등 한국의 대표적 노동조합에 자문했다.

한 작가는 노동조합 등에 정책 자문과 강연 등을 하다 최근 전업작가로 전환했다. 노동계에선 한 작가가 노동문제에 경제이론을 접목하면서도 실제 현장에서의 경험을 전달하는 능력이 뛰어나다고 평가한다. △서울대 전기공학부 졸업 △사회진보연대 부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프리랜서 작가(저서 ‘대통령의 숙제’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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