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서울 종로구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노사관계 제도 관행개선 자문단 발족 및 킥오프 회의'가 열렸다. (사진=뉴시스)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가 정부의 노동시장 개혁 청사진에 발맞춰 본격적인 가동에 나섰다. 이틀 연속 노동개혁 관련 자문단과 연구회를 발족한 데 이어 김문수 경사노위 위원장은 "민주노총은 장외투쟁을 할 것이 아니라 미래세대를 위해 노동개혁 논의를 함께해주길 바란다"며 민주노총의 경사노위 참여를 촉구했다.
 
경사노위는 지난 8일과 9일 '노사관계 제도ㆍ관행개선 자문단'과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 연구회'를 각각 발족했다.
 
앞서 정부는 노동개혁 추진 과정에서 경사노위를 통해 노동개혁에 대한 사회적 대화를 폭넓게 추진해나갈 계획을 밝힌 바 있다. 또한, 경사노위를 통해 노동개혁과 노동개혁 추가 과제도 지목된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을 위한 구체적인 과제에 대한 사회적 대화를 시작할 것도 함께 밝혔다.
 
경사노위는 이번 자문단과 연구회 발족을 시작으로 정부의 노동개혁에 보조를 맞춰나갈 예정이다. 정부는 노동계가 대화 참여에 적극적이지 않아 특별위원회 구성 및 논의가 어려운 상황 등을 고려해 자문단과 연구회를 먼저 발족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문단과 연구회를 시작으로 대화 당사자인 노사를 대화 테이블로 이끌어내겠다는 게 정부의 계획이다.
 
"사회 급변…노사 법ㆍ제도 글로벌 기준으로"
 
노사관계 제도ㆍ관행개선 자문단은 지난 8일 발족해 킥오프 회의를 진행했다.
 
자문단은 학계를 중심으로 구성했다. 조준모 성균관대 교수와 김덕호 경사노위 상임위원이 공동 단장을 맡고, 송강직 동아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김희성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신동윤 단국대 법학과 교수, 이상희 한국공학대 교수, 성상현 동국대 교수, 김용진 노무법인 하이에이치알 대표 등 7명이 위원을 맡았다.
 
경사노위는 "노사관계와 노동법에 대한 전문성을 갖추고 현장의 노사관계에 대해 경험과 조예가 깊은 학계 전문가들이 위원으로 참여했다"고 설명했다.
 
자문단은 디지털 전환, 4차 산업혁명 등 급변하는 경제ㆍ사회 변화에 대응해 노사관계 법ㆍ제도 등을 글로벌 기준에 부합하도록 개선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자율과 책임에 기초한 노사관계를 형성, 노사 상생 및 대등성 확보 등 안정적 노사관계 유지를 위한 노조설립, 단체교섭, 대체근로 개선 등 노사관계 제도 전반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아울러 노조의 투명한 조직 운영, 법률 준수 문화, 비정규직ㆍ미조직 근로자와의 지원ㆍ협력 방안 등도 논의한다.
 
자문단 논의를 상반기에 집중 논의해 상반기 내 결과를 발표할 계획이다. 논의 과정은 투명하게 공개할 예정이며, 현장의 실태와 목소리를 정확히 이해하고 반영할 수 있도록 노사 등 이해관계자들을 대상으로 간담회, FGI, 토론회 등의 활동도 병행한다.
 
조준모 교수는 "경사노위에서 전문가 중심으로 자문단을 꾸리고 진행하는 만큼 노사가 경사노위 의제별 위원회 등을 통해 참여하기를 학수고대하고 자문단은 노사가 참여할 때까지 준비 노력을 다할 것"이라며 "자문단에서는 글로벌 스탠다드, 노사 상생과 균형의 관점에서 기존의 관행과 제도를 재평가해서 고칠 부분을 발굴하고 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김덕호 상임위원은 "국가 간 생존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노동현장의 혼란과 함께 이대로는 안 된다는 위기의식이 있음에도 그간 제대로 된 논의조차 하기 힘들었던 게 사실"이라면서 "우선 전문가 중심의 논의로 시작하지만, 언제든지 노사가 참여하여 사회적 대화를 이어 나가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5인 미만 사업장'에도 근기법 단계 적용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 연구회는 8일 발족했다. 연구회는 새로운 형태의 노동자를 보호하는 방안과 5인 미만 사업장의 근로기준법 단계적 적용 확대 방안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연구회 역시 학계를 중심으로 위원을 꾸렸다. 노동시장 전문가와 노동법 전문가 총 14명이 '사회적 약자 보호 분과'와 '근로기준 현대화 분과'에 나누어 참여하고 분과에서 논의된 내용을 조율하고 종합하는 전원회의를 두기로 했다.
 
전원회의는 이철수 서울대 교수와 김덕호 경사노위 상임위원이 공동 좌장을 맡았다. 사회적 약자 보호 분과는 박귀천 이화여대 교수가, 근로기준 현대화 분과는 조용만 건국대 교수가 각각 분과위원장을 맡아 논의를 이끈다. 이외에도 남궁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김준영 한국고용정보원 연구위원, 한요셉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 김기선 충남대 교수, 박철성 한양대 교수, 이다혜 한동대 교수 등이 연구회에 이름을 올렸다.
 
사회적 약자 보호 분과는 모든 노무제공자가 일하는 과정에서 보편적으로 보장받아야 할 사항에 대한 제도적 기반 마련에 중점을 둔다.
 
급속한 디지털화로 특고ㆍ플랫폼종사자 등 새로운 고용형태종사자가 급증하고 있지만 계약 관련 불공정한 대우 등에 노출되며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연구회는 다양한 유형을 포괄하는 새로운 법ㆍ제도 마련에 머리를 모으기로 했다.
 
근로기준 현대화 분과는 5인 미만 사업장에서 근로기준법의 단계적 적용 확대와 근로자 파견제도 문제 개선을 연구 과제로 다룬다.
 
현행 근로기준법 적용범위는 1998년 이후 변하지 않아 5인 미만 사업장에는 일부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고 있다. 연장ㆍ야간ㆍ휴일근로 가산 수당 지급, 연차유급휴가,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 제한 규정, 부당해고 시 구제 신청 등이 대표적이다. 때문에 5인 미만 사업장에도 근로기준법을 확대 적용해 사각지대를 해소하자는 목소리고 높아지고 있다.
 
다만, 5인 미만 사업장에 근로기준법 적용이 확대될 경우 사용자에게 부담으로 작용해 사회ㆍ경제 전반에 미치는 충격이 매우 클 것이라는 지적도 따른다.
 
이에 연구회는 5인 미만 사업장의 실태를 파악하고, 전문가 중심의 심도 있는 논의와 노사, 이해관계자 및 현장의견 수렴 등을 거쳐 단계적ㆍ점진적 적용 확대 방안을 모색할 예정이다.
 
또한, 근로자 파견제도 개선 방안도 마련한다. 경사노위는 "파견근로자의 권익보호와 원활한 인력수급을 목적으로 1998년 파견법이 제정돼 시행되고 있으나 산업구조가 다변화되고 경영효율화가 요구되면서 입법 취지를 달성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특히, 사내하도급 사용사업장에 진성도급과 위장도급이 혼재된 상황에서 도급과 파견의 구별이 법원의 판단에 의존하는 경향을 보이면서 현장에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나아가 사내하도급뿐만 아니라 파견 영역에서도 임금의 중간착취, 고용불안, 차별 등 열악한 근로조건 문제도 함께 대두되고 있어 연구회에서 이러한 쟁점들에 대한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연구회는 자문단과 마찬가지로 약 5개월간 논의를 집중해 상반기 내 그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현장의 실태와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도록 노사 등 이해관계자들을 대상으로 간담회 등의 활동도 병행한다.
 
이철수 교수는 "미래세대를 위한 지속가능한 노동시장 구현을 위해 새로운 실험이 필요한 상황에서 전문가가 참여해 노사 상생과 근로기준 현대화를 논의하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며 "앞으로도 관련 연구와 사회적 대화가 계속되기를 기대한다"고 당부했다.
 
김덕호 상임위원은 "임금근로자 중심의 노동규범은 디지털 혁신 속에 광속으로 변화하고 있는 산업현장과 노동시장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노동계와 경영계가 모두 참여하여 허심탄회하게 이러한 문제에 대해 논의하고 협의해 나가기를 간절히 바라며 이를 위해 경사노위는 항상 사회적 대화의 문을 열어 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노총, "자문단 발족, 노사 배제해" 유감 표명
 
하지만 노동계의 반응은 싸늘하다. 한국노총은 "경사노위가 노사 참여 없이 공식 의결기구도 아닌 자문단 형식을 빌려 여론전을 펼치는 것에 심각한 유감을 표한다"고 비판했다.
 
전날 자문단 발족 소식이 전해지자 한국노총은 성명을 내고 "자문단은 미래노동시장연구회에서 일방적으로 제시한 파업 시 대체근로 전면 허용, 부당노동행위 형사처벌 제도 폐지 등 현장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문제를 논의함에도 노사를 완전히 배제했다"며 "경사노위는 자문단을 발족하면서 사회적 대화 기구란 본연의 기능을 망각한 채 노사 단체의 의견 수렴 절차조차 거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말로는 '노사가 경사노위 의제별 위원회 등을 통해 참여하기를 학수고대한다'면서 의제조정위원회 회의조차 개최하지 않은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한국노총은 노사관계 제도 전반에 대해 논의한다면서 노사 없는 자문단의 구성과 운영계획에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노동계는 정부의 노동개혁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정부의 노동개혁에 발맞춰 사회적 대화를 추진할 경사노위가 노동계 참여를 함께 가져갈 수 있을지 물음표가 던져지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달 17일 연임에 성공한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은 사회적 대화를 단절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지만, "경사노위라는 틀에 얽매이지 않고 노동이 원하는 방식으로 사회적 대화를 지속하려고 노력하겠다"는 입장도 함께 밝혀 경사노위 참여엔 명확한 답을 내리지 않았다.
 
민주노총의 경우 지난 1999년 2월 경사노위 전신인 노사정위원회를 탈퇴한 이후 사회적 대화에 참여하고 있지 않으며 지금도 '경사노위 불참'을 고수하고 있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지난달 16일 노동법룰과의 인터뷰에서 사회적 대화 전망을 묻는 질문에 "지금의 사회적 대화는 정부와 사용자가 한편인 2 대 1의 싸움이기 때문에 노동자 쪽에 승산이 없다고 보고 있다"고 부정적인 전망을 내놓은 바 있다.
 
고용노동부는 이러한 노동계 태도에 "노동개혁은 모든 국민과 노동자를 위해 추진하는 것으로, 노동계가 노동개혁에 대해 무조건 비판하는 것은 사회적 대화에 참여하려는 노력으로 보기 어렵다"고 밝히기도 했다.
 
경사노위는 사회적 대화와 관련해 노동계의 적극적인 참여를 촉구하고 있다. 특히, 지금도 경사노위 불참 원칙을 고수하고 있는 민주노총을 향해 경사노위 참여를 거듭 강조했다. 김문수 경사노위 위원장은 9일 "대통령 자문과 고용ㆍ노동 정책 심의ㆍ협의가 가능한 경사노위가 법적으로 존재하고 위원회는 20년 넘게 민주노총의 자리를 비워놓고 있다"며 "민주노총은 장외투쟁을 할 것이 아니라 미래세대를 위해 경사노위에 참여하여 노동개혁 논의를 함께해주기를 바란다"고 촉구했다.
 
이동희 기자 dhlee@elabor.co.kr